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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식중독 사고,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
‘유치원 악몽’이 재현되고 있다. 이번엔 아이들의 먹거리다. 지난 6월 17일 경기도 안산의 한 유치원에서 원생 100명이 집단 식중독 증세를 보여 입원 및 치료를 받고 있다. 지난 6월 26일에도 부산의 어린이집에서 36명의 원생들이 집단 식중독 증상을 보였고, 전체 검사에서 살모넬라균과 노로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유치원 집단 식중독은 지난 2018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경기도 안산의 유치원의 경우는 당시 감사에서도 실제 사용되어야 할 예산을 다른 곳에 사용해서 적발된 바 있지만, 유치원 경영 및 회계 문제가 시정되지 않고 이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채 오늘에 이르다가 지금과 같은 집단 식중독 사태로 번졌다. 도대체 왜 이런 사고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지 뉴스톱에서 확인했다.
경기도 안산의 유치원에서는 전체 원아 184명 중 절반이 넘는 인원이 복통과 발열, 설사 등의 증상을 보이는 가운데, 이 중 일부는 이른바 ‘햄버거병’으로 불리는 용혈성요독증후군 증세까지 보여 중환자실 치료까지 받는 등 사태가 심각하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은 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의 일종이며 주로 어린아이들에게 발생하는 경우 ‘전형적 설사연관형’으로, 오염된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나타나는 질환이다. 신장이 불순물을 걸러주지 못해 체내에 독소가 쌓이면서 발생하게 되며 사망률이 5~10%에 이를 정도로 위험한 병이다.
① 유치원 급식 보존식 보관 안해도 과태료 수십만원
경기도 안산상록경찰서는 지난 6월 29일 해당 유치원에 대해 식품위생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유치원 원장을 불구속 입건하고 유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피해 아동 학부모로부터 접수한 고소장, 고소인 조사결과 등을 토대로 유치원 내 CCTV와 급식 기록이 담긴 장부 등 증거를 확보했지만, 정작 원인 규명에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는 보존식은 확보할 수 없었다. 유치원 측이 보존식을 제대로 보관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치원의 급·간식 관리는 식품위생법에 따른다. 식품위생법 제88조 2항에서는 ‘(집단급식소에서) 조리·제공한 식품의 매회 1인분 분량을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144시간 이상 보관할 것’ 이라는 조항을 두고 있지만, 해당 유치원은 이를 남겨두지 않았다. 유치원 원장은 “간식의 경우 보존식을 보관해야 한다는 점을 몰라서 그랬다”면서 “고의로 폐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 유치원이 폐기한 6개의 급·간식 중에는 점심 식사도 포함되어 있어 원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졌다. 반면 유치원 조리사는 “남은 음식이 없어 아욱된장국 등 일부 보존식을 보관하지 못했다”고 배치되는 진술을 했다.
100명의 아이들을 식중독에 걸리게 한 원인을 규명할 주요 단서인 보존식을 폐기했음에도, 유치원 측이 치른 대가는 50만원의 과태료를 납부한 일 뿐이다. 추가로 경기 안산시는 지난달 30일 유치원에 200만 원의 과태료를 더 부과했다. 식품위생법 제86조에 식중독 환자나 의심 증상자가 발견되면 지체 없이 관할 지자체에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 이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과태료 처분은 솜방망이 처벌에 불과하다. 안전한 급·간식을 제공하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과태료를 내는 것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경기도교육청이 공시한 도내 사립유치원 감사 결과 보고서(2015~2019)에 따르면, 급·간식 문제로 경고 이상의 지적을 받은 경우가 최소 10건 이상에 달했다. 유통기한을 넘긴 식자재를 보관하거나, 수입산 식자재를 국내산으로 둔갑시켜 급식일지에 기재하는 일, 식자재 검수서를 작성하지 않는 일이 흔한 적발 사항이었다. 식자재 비용을 부정하게 아껴서 회계 부정을 저지르는 일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안들은 경고 처분에 그치거나 관리자 감봉 1개월 등 가벼운 처분만 받았다.
② '유치원 5개당 영양사 1명' 규제 완화
나아가 급·간식의 영양과 안전을 책임질 영양사의 고용 문제도 심각하다. 유치원 급식에 적용되는 법은 유아교육법과 식품위생법으로 2가지인데, 이 두 법이 서로 상충한다. 식품위생법은 50인 이상 유치원에 영양사를 고용하게 되어있는데, 유아교육법 시행규칙(제3조)에는 100명 이상인 유치원은 면허를 받은 영양사 1명을 배치하되 같은 교육청 관할 구역 안에서는 5개 이내 유치원에서 공동으로 영양사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식품위생법의 기준을 더 강화해 적용해도 모자랄 판에 유아교육법의 시행규칙만으로 기준을 대폭 완화해준 것이다.
규정이 이렇다 보니 영양사 1명이 5곳의 유치원을 도맡는 사례가 대다수다. 유치원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법이 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굳이 영양사를 제대로 고용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영양사가 단독 배치된 사립유치원은 전체 930곳 중 88곳에 불과하며, 1명이 여러 유치원에 공동 배치된 곳은 525곳, 원아 수 100명 미만이어서 영양사가 배치되지 않은 곳은 371곳에 달한다. 전체 사립유치원 중 39%에 영양사가 없는 것이고, 절반 이상은 영양사 1명이 1주일에 1번꼴로 유치원 급·간식을 관리한다.
영양사들은 적은 월 급여를 받고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기에, 영양사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없다. 식자재 검수, 조리, 배식, 청소 과정 점검 등의 영양사 업무를 1명이 매일 5곳에서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영양사 면허를 ‘대여’해주는 수준에 그치는 셈인데, 2018년 경기도의 한 대형유치원에서는 출근하지 않는 영양사의 급여를 672만 원으로 부풀려 집행하는 회계 부정을 저지르기도 했다. 식중독 예방의 총 책임자인 영양사의 노동 환경이 이러니, 식중독 사태가 언제 또다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구조다.
경기도 내 공립 유치원의 경우는 사정이 좀 낫다. 공립 단설유치원의 경우 115개 원 중 78%인 90곳에 영양사가 단독으로 배치됐고, 공동배치된 곳은 25곳으로 미배치된 곳은 없었다. 병설유치원도 소속 초등학교 영양교사가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공립의 경우는 영양교사 관리 밖에 있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유치원의 급식이 식품위생법을 적용받는 것은 한계로 꼽힌다. 초·중·고교는 학교급식법을 적용받아 학교 인원 수와 무관하게 교육청의 위생 안전 점검을 연 2회씩 받는다. 그러나 식품위생법에 따르는 유치원은 관할 지자체의 검사 연 1회 이상을 받는 것이 전부다. 학교급식법에 유치원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있지만 현실에 반영하기에 한계가 많다. 2020년 학교급식법 개정안 통과 당시 교육부는 사립유치원이 영세하다는 이유로 영양교사 배치를 신중히 검토하라는 의견을 냈고, 결과적으로 개정안에 영양사 의무 배치 부분은 빠졌다. 사립 유치원 비리를 제기했던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부가 영양교사를 반드시 배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부분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고 언론과 인터뷰한 바 있다.
③ 이익집단 사립유치원에 정치권 눈치보기
많은 사립유치원과 사설어린이집이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익집단화되어 있다. 2018년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 이후 국민적 성원에 힘입은 유치원 3법이 난관 끝에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려졌지만, 무려 466일만에 법안이 통과됐다. 사유재산권을 주장하며 유치원 3법을 반대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 등 관련 이익단체들의 보이지 않는 압력과 이에 눈치 보느라 할 일을 제대로 못 한 정치권의 합작품이다. 국회 법안 통과 당시 자유한국당은 퇴장한 채였다. 유치원 3법에는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해 회계 프로그램인 에듀파인을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내용, 교비 회계 수입 등을 부당하게 사용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대부분의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사립유치원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유치원 감사 결과가 세상에 알려진 것도 국회 국정감사에서 박용진 의원에 의해서였고, 이에 앞서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도 유치원 실명 공개를 요구한 바 있다. 교육부는 당시 감사에 적발된 유치원에 대한 실명 공개가 적법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부적으로 받아놓고도 명단 공개를 하지 않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번 경기도 안산 유치원 집단 식중독 사태 이후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간식은 법적으로 보존식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해당 유치원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3시간만에 입장을 번복한 바 있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성명을 내고 “(이 교육관의 발언은) 관련 기관들로 하여금 알아서 대충 무마하라는 시그널로 읽히기에 충분하다”며 퇴진을 요구했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2020년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의 건강권조차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유아교육을 여전히 ‘비즈니스’로 여기는 이들이 만연하고, 유권자가 아닌 아이들을 위한 정책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마는 정치 현실 속에서 한국 사회의 저출생에 대한 논의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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