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우리에게는 더 많은 '류호정'이 필요하다"
민주당원·일베회원들
성차별·성희롱 발언 쏟아내
류 의원 “여성이 일터에서 감내하는
성희롱·성차별 공론장에서 드러났다”
국회 평균 얼굴은 ‘50대 중년 남성’
천편일률 국회 넘어 다양성 보여줘야
“저는 입법 노동자이고, 국회는 제 일터예요. 제가 겪고 있는 이 일들이 여성들이 일터에서 겪는 일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여성들이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하고 있는 성희롱과 성차별을 공론장에서 확인하게 된 것이죠.”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5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옷차림을 둘러싸고 쏟아진 성차별·성희롱적 비난에 대해 “제 옷차림에 쏟아진 성희롱적 표현은 보통의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낸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전날(4일) 붉은 색 계열 원피스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류 의원은 난데없는 악성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한 언론사가 류 의원이 국회 본회의에서 퇴장하는 모습을 보도하며 복장을 부각했다. 곧 이어 기사 댓글에는 복장 지적이 쏟아졌다. 의원 대부분이 어두운 색 정장을 입는 국회에서 캐주얼한 원피스 차림이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지 않다는 취지의 단순 비판부터 심각한 성희롱 댓글까지 나왔다,
청년 여성 정치인을 향한 혐오 댓글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았다. 페이스북 그룹인 ‘더불어민주당 100만 당원 모임’에 올라온 일부 게시물은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회원들이 류 의원을 향해 뱉은 성희롱·성차별 게시물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류 의원 사진을 올리고 “술값 받으러 왔냐”, “술집 도우미”, “정의당이 아니라 보도당” 등 성폭력적 게시물과 댓글이 줄을 이었다.
온라인 상 비난이 도를 넘자 정의당은 이날 논평을 내고 “우리 당 류호정 의원을 향한 비난이 성차별적인 편견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강력히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의정 활동에 대한 평가가 아닌 여성 정치인의 외모, 이미지로 평가함으로써 정치인으로서의 ‘자격 없음’을 말하려고 하는 행태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면서 “상대에게 고압적으로 소리치는 것은 국회의 당연한 모습이 되고 원피스를 입은 게 문제시되는 작금의 현실에 유감을 표하며 지금은 2020년임을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여성 의원들의 연대 메시지도 이어졌다.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17년 전 유시민 전 의원의 국회 등원 장면이 자동으로 떠오른다”며 “소위 ‘백바지’ 사건으로부터 20년 가까이 흐른 지금 같은 논란이 일어나고 그때보다 더 과격한 공격에 생각이 많아진다”고 말다. 그러면서 “아, 쉰내 나”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고민정 의원도 “류 의원의 모든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나와 생각이 다른 점들이 꽤나 많기 때문”이라면서도 “그런데 입은 옷으로 과도한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고 썼다. 그러면서 “국회의 과도한 엄숙주의와 권위주의를 깨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류 의원을 옹호했다. 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누구나 다 살아가는 모습과 방법은 다르다. 국회가 얼마나 권위주의인지 오늘 새삼 더 느낀다. 바꾸자”라고 썼다.
류호정 “국회의 권위가 양복으로
세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류 의원은 <여성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이 정도의 흔한 옷차림을 했음에도 혐오 표현이 쏟아지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보통의 여성들을 그러한(혐오적) 시선으로 봐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류 의원은 지난 6월 1일 21대 국회 개원때 부터 청바지와 반바지, 점프수트 등을 입고 일터인 국회에 출근했다. “청년 여성들이 흔히 입는 옷”이기에 입은 것이라고 했다.
원피스 복장은 전날 열린 청년 국회의원 연구단체 ‘2040청년다방’ 포럼에 참석할 때 입었던 옷이다. 당시 ‘단체 공동대표인 유정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류 의원은 ‘오늘 복장으로 내일 본회의에 참석하기’로 참석자들과 약속했다.
다양한 복장으로 국회 본회의에 출석한 류 의원은 “50대 중년 남성을 상징하는 양복과 넥타이 차림의 국회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고 했다. 21대 국회의원 300인의 평균 연령은 54.9세다. 20대는 28세인 류 의원과 29세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둘 뿐이다. 여성 의원은 19%(57명), 남성 의원은 81%(243명)를 차지한다.
류 의원은 자신을 향해 쏟아진 혐오표현을 지켜본 여성 노동자들이 자기검열을 하지 않을지 우려했다. 그는 “여성들은 이런 문제가 불거지면 또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며 “자기검열이 정작 필요한 것은 성희롱적 발언을 한 사람이다. 우리는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류 의원은 “제 원피스로 인해 공론장이 열렸다고 생각한다”며 “우리 정치의 구태의연한, 여성 청년에 대해 쏟아지는 혐오표현이 전시됨으로써 뭔가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또 “국회의 권위는 양복으로 세워지는 게 아니다”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옷을 입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 “문제는 복장이 아니다…
청년 여성 정치인 폄하가 진짜 문제”
전문가들은 류 의원을 향한 비난이 청년 여성 정치인에 대한 폄하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이번 논란에 대해 “무의미한 논란”이라고 일축하며 “국회의원은 외모나 복장이 아닌 의정활동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헌국회 이후 지금까지 문제를 일으킨 국회의원 대부분은 어두운 색의 정장을 입은 사람이었다”며 복장과 의정활동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정장을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누드사진’을 검색하는 것보다 복장에 상관없이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민의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서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면서 “복장을 기준으로 정치인을 선택하면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인을 뽑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복장 문제가 아닌 청 여성 의원에 대한 비난이 드러난 사건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복장 지적을 가장해 사실상 청년 여성 의원에 대한 비난, 불신을 드러낸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청년 여성 의원을 의정활동이 아닌 외모로 평가하고 폄하하는 행위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명확히 들어났다”고 꼬집었다.
권 대표는 획일화된 정치판에 대해 지적하며 “다양성이 전혀 담보되지 않은 국회가 달라져야 한다”면서 “국회에 더 많은 ‘류호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국회에 다양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의원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며 “그래야 이런 논란같지 않은 논란도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