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부모도 교사도 원하지 않는 어린이집 '방학' 대안은?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저도 워킹맘이다 보니 '강제 방학'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네요. 어린이집 방학 없애고 교사들 원하는 시기에 연차 사용하게 하면 학부모도 방학 부담 없고, 교사들도 원할 때 휴식할 수 있어 좋을 것 같아요.”
전북 전주시의 한 보육교사가 어린이집 방학에 대해 한 말이다. 어린이집은 관행처럼 7월 말 ~ 8월 초 가정학습기간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방학’을 해왔다. 맞벌이 가정에서는 이 시기에 맞춰 휴가를 내거나 그럴 수 없으면 친정이나 시댁에 도움을 구한다.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 그렇지 못한 가정도 있다.
온라인 맘카페에는 7월 초부터 시작해 어린이집 방학과 관련해 많은 질문과 댓글이 게재돼 있다. 대부분 ‘혹시 우리 아이만 보내는 건 아닌지’, ‘괜히 보냈다가 아이가 눈치 보게 되지는 않을지’ 우려가 된다는 내용이다.
한 워킹맘은 “사정상 방학 기간인 5일 다 등원시킨다고 했더니 어린이집에서는 ‘저희 아이밖에 등원하는 아이가 없다’며 ‘돌봐줄 사람을 찾거나 휴가를 써서 아이 등원을 안 시키면 안 되겠냐’고 해서 좀 서럽기도 하고 아이가 안타깝기도 하다”면서 “아이 할머니가 봐줄 수 없는 워킹맘들은 어떻게 할 계획인지” 조언을 구했다.
이 글에는 44개 댓글이 달렸다. “매번 방학 수요조사를 하는데… 결국 우리 애만 온다고 (하더라)”, “방학에 아이 혼자 있으면 눈치 보여서 못 보내죠”, “수요조사는 형식일 뿐 미리 알아서 대책 세우라는 신호. 그래도 미리 알려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든다”는 등의 의견이 있었다.
어린이집은 연중 운영이 원칙. 사실상 방학이라는 게 없다. 2020년 보육사업 안내(77페이지) ‘하절기 등 집중휴가기간 운영원칙’에는 “어린이집은 연중 운영이 원칙(공휴일 제외)이므로 하계휴가사용 등을 이유로 임시휴원(일명 ‘방학’)은 불가함”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면서 “보육공백을 최소화하고 보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반 구성, 교사 대 아동비율을 달리해 운영할 수 있으며 이 경우 반드시 보호자의 보육수요조사를 거쳐야 한다. 맞벌이 가정 등 긴급보육이 필요한 아동을 위해 당번교사를 배치해야 한다”고 덧붙여져 있다.
◇ 보육교사 “원하는 때 연차 쓸 수 있다면 바랄 게 없다”
부모는 어린이집으로부터 수요조사서를 받자마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 부모만 방학이 힘들까. 힘든 건 보육교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3일부터 3일간 ‘어린이집교사 상담전문’ 네이버 밴드를 통해 ‘방학’에 대한 보육교사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보육교사들은 댓글을 통해 “다 쉬는 것도 아니고 당직으로 며칠 나가면 휴가 같지도 않다”, “그나마 방학이 있어 쉰다”, “유치원과 학교는 방학이 있는데 왜 어린이집만 방학이 없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교사가 원하는 시기에 연차를 사용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등 반응이 나왔다.
보육교사들의 바람은 딱 하나다. 연차를 쓰고 싶을 때 사용하는 것.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육교사 법정연가 사용과 보수교육 참석 등으로 인한 부재 시 보육공백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대체교사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부모도 보육교사도 원하지 않는 방학을 왜 하는 걸까.
익명을 요청한 한 어린이집 원장은 지난 5일 베이비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교사들이 한꺼번에 연차를 소진해야 편하다. 1년 내내 돌아가면서 연차를 사용하면 매일 한 명씩 휴가를 가는 셈이라 휴가 관리가 너무 힘들다. 그때마다 대체교사를 신청하거나 보조교사가 그 반을 맡아야 하는데 담임교사가 자리를 비우면 마음도 불안하고 신경 쓸 것도 많아 힘들다”고 설명했다.
대체교사와 관련해선, “(대체교사는) 일정 시간만 근무하면서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해당 어린이집 운영에 관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 원장 입장에서는 대체교사 신청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대체교사를 신청하더라도 육아종합지원센터의 대체교사 인력 부족으로 지원받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지자체와 어린이집에서 직접 대체교사를 구하고 인건비를 지원받는 방법도 열려 있다.
◇ 원장 “교사들 연차 한꺼번에 소진해야 편하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지난 5일, 6일 이틀간 보육 현장과 양육 당사자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김정덕 정치하는엄마들 공동대표는 “보육교사들은 노동자로서 휴가 사용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 휴가에 맞춰 모든 양육자가 휴가를 갈 수는 없으므로 보육수요조사서를 받아든 양육자들은 난감한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김 공동대표는 보육사업안내 ‘하절기 등 집중휴가기간 운영원칙’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보호자의 보육수요조사를 거친다면 ‘보육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반 구성, 교사 대 아동비율을 달리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양육자에게 질 낮은 보육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돌봄의 질은 돌보는 사람의 노동조건을 뛰어넘을 수 없다”면서 “보육교사들의 노동조건을 보호하고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상시로 업무를 대체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고용환경이 필요하다. 이는 사회서비스원이 도입돼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집에서 비담임교사 1인 채용하게 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함미영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지부장은 “가정에 수요조사서를 보내면 ‘저희 반에 몇 명 나오나요?’, ‘마지막에 하원 하는 아이가 몇 시에 가나요?’ 전화로 물어보는 부모가 종종 있다”면서 “비담임교사 1명을 원에서 채용하고 이를 지자체나 정부에서 지원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어린이집교사 상담전문’ 밴드 운영자인 문경자 교사도 함 지부장과 같은 생각이었다. 문 교사는 “교사의 연차사용·경조사·교육·병가 등에 대비해 항상 1인의 추가인력을 원에 배치해두면 굳이 대체교사 신청 없이도 보육공백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가정학습기간과 같은 방학을 둘 이유도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어린이집 교사에게도 지침으로 방학 기간을 달라"
공식적인 방학 운영에 대한 의견도 나왔다. 최순미 공공연대노동조합 보육교직원노조 위원장은 “어린이집 교사들의 요구는 유치원처럼 지침으로 방학 기간을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집교사 상담전문’ 밴드에도 “유치원은 수업 일수도 조정하고 방학도 정해져 있는데 똑같이 누리과정 하고 있는 어린이집은 왜 방학이 없는 건가, 교육부 소속이 아니라는 게 이유인가”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밖에도 교사들은 “집중휴가기간에 3일 정도는 방학을 할 수 있게 제도가 마련돼 교사들 휴가를 보장해주면 좋겠다. 눈치 보며 애들 나올지 안 나올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도록”, “반강제로 쉬는 연차도 눈치 보고 가정학습기간에도 아이들이 나오는 상황이라 이번 방학 하루 쉬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방학도 없다” 등의 의견을 개진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어린이집 원장은 “교사들이 휴가 가더라도 반 아이들에게 문제는 없는지, 연락 오는 건 없는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유치원이나 학교처럼 짧은 기간이라도 문을 닫게 되면 마음 편하지 않겠느냐”면서 “수요조사해서 나온다는 애들 막을 수도 없고 당직제로 운영하는 방학은 사실상 쉬는 것도 아니고 안 쉬는 것도 아니고 불편하다”며 유치원과 같은 방학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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