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발화자와 수신자에 따라 움직인다. 누가 그 말을 언제 어디에서 왜 했는지를 소거하면 해당 언어의 의미를 왜곡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 특히 성폭력처럼 사회적 규범과의 관계에서 계속 의미가 급진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는 문제일 경우 정확한 언어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역사학자로서 성폭력에서 수치라는 감정을 연구한 조애나 버크는 많은 문화권에서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성폭력을 언급하기보다는 “나의 존엄”처럼 완곡어법을 사용했으며, 가해자들은 잔혹한 가해행위 자체를 구체적으로 떠벌린다면 피해자는 “사악한” 같은 감정적 묘사를 하는 경향을 발견했다. 일본에서 성폭력과 관련된 단어들이 “레이프”(rape)처럼 굳이 영어식 표현의 음가를 그대로 발음하는 것도 간접화법의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