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즈음이었던가. 어느 날 문득 아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운전하는 엄마라서 좋다.” ‘운전’이란 능력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일치감치 알아버린 다섯 살.
아이가 태어나면, 순식간에 이동 약자가 되고 만다(아이와 엄마 모두!).
작년 즈음이었던가. 어느 날 문득 아이가 말했다.
“우리 엄마가 운전하는 엄마라서 좋다.” ‘운전’이란 능력이 엄마에게 얼마나 큰 무기가 되는지 일치감치 알아버린 다섯 살.
아이가 태어나면, 순식간에 이동 약자가 되고 만다(아이와 엄마 모두!).
평일 오후였다. 흔히 ‘학원가’로 불리는 동네여서 그 시간이 되면 곳곳이 북적인다. 내가 자리 잡은 커피 전문점에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물론 영유아와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한 엄마가 남매에게 “조용히 해야 해, 시끄럽게 하면 나가는 거야”라고 주의를 주며 가게로 들어섰다. 잠시 뒤 엄마가 주문을 하러 간 사이 여동생이 칭얼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유치원복을 입은, 대여섯 살로 뵈는 오빠가 동생을 달랜다.
원문보기: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4761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들 한다. 어머니의 중요성과 위대함을 강조하는 이 위대인 격언은 주로 ‘어머니의 숭고한 희생’과 같은 단어로 연결된다. 그리고 그 뒤에 숨어 있는 많은 것들을 왜곡시킨다. 마치, 인간 개인에 대한 신적 책임이 어머니 한 사람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자신을 대신해 만든 존재가 과연 어머니 하나뿐일까? 아버지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지역 사회는? 정부는? 이들 모두에겐 책임이 없는 걸까? 이들에게는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책임만 존재하는 것일까? 고작해야 불완전한 인간일 뿐인 엄마 한 사람에게 또 다른 인간, 그것도 전적인 의존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아이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전가될 수 있기나 할까?